1. 대상포진-증상 몸이 기억하는 통증
몸 어딘가에 묘한 쑤심이 있다. 단순한 근육통인가 싶어 무시하다 보면, 그 부위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얼마 안 가 물집이 잡힌다. 피부가 벌겋게 부풀어 오르고, 바늘로 찌르듯 찌릿한 통증이 몰려온다. 이게 반복되면 슬슬 의심해야 한다. 대상포진이다. **대상포진(Herpes Zoster)**은 신경절에 숨어 있던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되면서 발생하는 감염성 질환이다. 이 바이러스는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aricella-zoster virus, VZV)로, 이름처럼 어릴 적 수두를 앓고 난 뒤에도 신경조직에 남아 있다가, 면역이 약해질 때 다시 깨어난다. 문제는 그 증상이 단순히 피부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피부 발진보다 먼저 통증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서, 처음엔 허리디스크, 흉통, 장염 같은 다른 병으로 오인하기 쉽다. 보통은 몸 한쪽, 특히 흉부, 얼굴, 엉덩이, 허벅지에 띠 모양으로 퍼지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영어로는 shingles라고도 불린다. 띠처럼 따라가는 그 모양 때문에 그렇다. 통증은 화끈거리거나 찌르는 듯하며, 피부에 손만 닿아도 아프다. 심하면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고통스럽다. **한국피부과학회지(2023년)**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대상포진 환자의 약 **20~30%는 대상포진 후 신경통(PHN)**을 겪는다. 이건 피부 증상이 사라진 뒤에도 통증이 수개월, 심하면 수년간 지속되는 상태다. 얼굴에 생기는 경우엔 시력 손상, 안면 신경 마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안와대상포진(Herpes zoster ophthalmicus)**은 각막염, 시신경염으로 발전할 수 있어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 지인 중 하나는 귀 주변에 물집이 생기고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는데, 진단 결과는 람세이 헌트 증후군(Ramsay Hunt syndrome). 안면 신경이 마비돼 입이 한쪽으로 처지고 말을 제대로 못 하게 됐다. 피부병이라기보다 신경의 문제였다. 이처럼 대상포진은 단순한 발진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2. 대상포진 원인-바이러스는 왜 다시 깨어나는가
질병에는 타이밍이라는 게 있다. 대상포진도 그렇다. 평소엔 아무 증상이 없다가, 한참 동안 잠잠하던 바이러스가 어느 날 갑자기 깨어난다. 그 시점이 묘하게도 피곤하거나 큰 스트레스를 겪은 직후인 경우가 많다. 대상포진의 원인은 하나로 규정하기 어렵지만, 가장 큰 요인은 면역력 저하다. 나이가 들어 면역체계가 약해지거나, 과로와 수면 부족이 쌓일 때, 혹은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은 후에 자주 발병한다. 2022년 Clinical Infectious Diseases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장기적인 스트레스와 코르티솔 수치 증가가 T세포 면역을 억제해 대상포진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정과 면역은 무관하지 않다는 말이다. 또한 암 치료 중인 환자, 장기이식 수술을 받은 사람, 면역억제제를 장기 복용하는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 등은 대상포진 발병률이 일반인보다 훨씬 높다. 당뇨나 만성 신장병 같은 질환도 위험 요인이다. 흥미로운 건, 최근 코로나19 백신 접종 이후 대상포진 발병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Journal of the European Academy of Dermatology and Venereology(2021)에 따르면, mRNA 백신 접종 후 수일 내 대상포진이 나타난 사례들이 논의되었다. 물론 인과관계가 명확히 규명된 건 아니지만, 면역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가 촉매 역할을 했을 가능성은 무시할 수 없다. 결국 핵심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우리 몸의 상태다. 수두 바이러스를 갖고 있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다 발병하지는 않는다. 피로가 누적되고, 몸이 지치고, 마음까지 무너지면 그때 바이러스는 깨어난다. 잠들어 있던 적이 다시 움직이는 것이다.
3. 대상포진 치료-통증을 줄이고, 후유증을 막는 싸움
대상포진의 치료는 속도전이다. 발병 후 72시간 이내에 항바이러스제를 시작해야 예후가 좋다는 게 의학계의 정설이다.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약물은 발라시클로비르(Valacyclovir), 아시클로버(Acyclovir) 등이다. 이 약들은 바이러스의 복제를 막아 증상을 빠르게 완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항바이러스제를 제때 복용하면 통증이 줄고, 후유증인 신경통 위험도 낮아진다. 통증 조절도 치료의 중요한 축이다. 심한 경우 신경차단술, 경막외 스테로이드 주사, 가바펜틴이나 프레가발린 같은 신경통 약물이 사용된다. 고령 환자나 면역 저하자에게는 스테로이드 복합 요법도 병행한다. 하지만 치료보다 더 중요한 건 예방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대상포진 예방 백신(Shingrix)**이 50세 이상, 혹은 만성질환자에게 권장되고 있다. 이전의 생백신인 조스타박스보다 효과와 지속력이 높고, 부작용도 적다. 미국 CDC는 2022년부터 면역 억제자에게도 비활성 백신 접종을 권장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흐름을 따르고 있다. 필자 역시 부모님께 백신 접종을 권유했고, 실제로 주변에선 백신 접종 후 대상포진이 확연히 줄었다는 후기도 자주 들린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평소 관리다. 잠을 잘 자고, 스트레스를 덜 받고, 체력을 유지하는 것. 간단하지만 실행이 어려운 습관들.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태도에서 모든 차이가 시작된다. 대상포진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 신경을 건드리는 병이다. 육체적인 고통은 물론이고, 정신적인 피로까지 남긴다. 방심할 틈 없이 내 몸을 돌보고, 작더라도 불편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각이 필요하다.
이미지 출처: Pixabay (무료 이미지 제공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