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면증의 원인
한동안 계속 피곤했다. 자고 또 자도 개운하지 않았고, 일을 하다가도 눈이 스르르 감겼다. 게으름인가 싶어 자책했고, 습관의 문제겠거니 넘기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병이라면? 기면증. 흔한 병은 아니지만, 겪는 사람에겐 삶 전체가 흔들릴 만큼 강력하다. 말 그대로 깨어있을 수 없는 병이다. 자고 싶지 않은데도 잠이 밀려온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중요한 회의 중에도, 길을 걷다가도. 감정이 격해질 때 웃거나 놀라는 것만으로도 힘이 풀리고 쓰러지는 탈력발작이 동반되기도 한다. 의학적으로 기면증은 수면-각성 주기를 조절하는 뇌 기능의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하이포크레틴(또는 오렉신)**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결핍이 핵심이다. 이 물질은 각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기면증 환자에게서는 뇌 속 시상하부 부근에서 이 물질이 거의 사라진다. 왜 사라지는가. 명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유전적 요인과 면역 반응이 관련 있을 가능성이 높다. 2010년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에서 발표된 논문은, 특정 HLA 유전자형(HLA-DQB1*06:02)을 가진 사람에게서 기면증 발병률이 유의미하게 높다는 점을 제시했다.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이 실수로 하이포크레틴을 만들어내는 뉴런을 공격한다는 가설이다. 즉, 자가면역 질환처럼 작동한다는 의미다. 환경적인 요인, 예를 들어 바이러스 감염이 이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한편으로는 뇌의 이상 신호 외에도 현대인의 수면 습관, 장기적인 스트레스, 낮밤이 바뀌는 교대 근무 등 복합적인 환경 요인도 함께 영향을 준다는 분석이 많다. 다만, 일반적인 수면장애와 기면증을 구분 짓는 건 의지로 조절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냥 피곤한 게 아니다. 몸이 잠을 거부할 수 없는 상태로 떨어진다. 개인적으로는, 기면증을 겪는 이들을 지켜보며 이 질환이 얼마나 오해받기 쉬운지 느낀 적이 있다. 게을러서 그런 것, 노력 부족이라는 말은 상황을 더 힘들게 만든다. 원인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도 뇌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걸 모르고 사람을 평가하는 건, 너무 쉽고 잔인하다. 이 질환은 아직도 많은 부분이 연구 중이다. 원인을 정확히 밝혀내는 일은 완전한 치료의 단서를 찾는 데 필수다. 최근 하버드의대 신경과학센터에서는 하이포크레틴 신경세포의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한 동물 실험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보고한 바 있다. 인간에게 적용되기까진 시간이 걸리겠지만, 치료 접근 방식 자체가 조금씩 바뀌고 있는 건 분명하다. 기면증은 단순한 나른함이 아니다. 뇌가 각성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신경학적 질환이다. 원인은 복잡하지만, 결코 환자의 책임이 아니다. 누군가가 이런 상태에 놓여 있다면, 필요한 건 비난이 아니라 이해다.
2. 기면증의 치료
기면증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다. 졸립다는 표현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마치 뇌가 스스로 꺼지는 느낌에 가깝다. 문제는 이런 상태가 반복된다는 거다. 삶 전체가 일종의 경계 속에서 움직인다. 언제 졸음이 몰려올지 몰라서. 치료라고 하면 흔히 낫게 만드는 걸 떠올리지만, 기면증은 완치보다는 관리에 가깝다. 현재로선 뿌리부터 고치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대신 낮 동안 깨어 있는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게 하는 것, 이게 치료의 중심이다. 가장 흔히 사용되는 약물은 **모다피닐(modafinil)**과 **아모다피닐(armodafinil)**이다. 각성유도제 계열인데, 뇌의 특정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해서 졸음을 줄여준다. 기존의 암페타민계 자극제보다 부작용이 덜하고, 중독 위험도 낮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서울아산병원 수면의학센터 연구에서도 모다피닐 복용군은 낮 동안 졸림 지수가 평균 40% 이상 개선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약물만으로 다 해결되지는 않는다. 탈력발작 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항우울제(SSRI나 TCA)**가 쓰인다. 이건 근육 긴장을 조절해서 감정 반응에 따른 근력 상실을 막기 위한 것이다. 간혹 수면 마비나 환각처럼 동반 증상이 심할 땐 수면 안정제나 저용량 항정신병제가 추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치료에서 진짜 중요한 건 생활 방식의 재정비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하루 2~3번 15분 정도의 짧은 낮잠이 오히려 깨어있는 시간을 더 길게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처음 들었을 땐 의아했다. 자면 더 졸릴 것 같은데?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수면 압력을 낮춰줘서 나머지 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했다.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수면 리듬 유지도 치료의 핵심이다. 뇌가 혼란을 겪지 않도록 매일 같은 시간에 자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게 기본이 된다. 물론 이게 쉽지는 않다. 특히 일상이 유동적인 사람에겐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틀을 만드는 건 분명 도움이 된다. 여기에 스트레스 관리도 빠질 수 없다. 감정이 기면증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꽤 많다. 탈력발작이 대표적이다. 웃거나 놀라는 등 강한 감정 반응이 유발되면 그대로 주저앉는다. 정신적인 안정이 유지돼야 예측 가능한 상태를 만들 수 있다. 최근에는 하이포크레틴 유전자 보충요법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수면연구소에서는 바이러스 벡터를 이용해 하이포크레틴을 신경세포에 주입하는 동물 실험을 했고, 일부 회복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인간 임상 단계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희망적인 시도다. 치료는 단순한 약 복용 이상의 과정이다. 질환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리듬에 맞춘 일상을 만들어가는 일. 그게 쉽진 않다. 피로함보다 더 지치는 건 사람들의 오해와 시선이다. 하지만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관리의 시작은, 나를 먼저 이해하는 것에서부터다.
3. 기면증의 예방
기면증은 예방이 쉽지 않다. 뚜렷한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이포크레틴이라는 뇌 속 신경전달물질의 소실이 가장 큰 원인으로 여겨지지만, 그게 왜 사라지는지는 아직 가설 단계에 머물러 있다. 자가면역 반응, 유전, 환경적 요인. 다 얽혀 있다. 그래서 더 어렵다. 어떤 명확한 수칙 하나로 막을 수 있는 질환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다. 기면증의 발현을 늦추거나 증상을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그건 사실, 수면장애 전반에 통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건, 수면 위생이다. 이건 단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는 말이 아니다. 일정한 수면 패턴을 유지하는 것. 뇌가 지금은 깨어있을 시간, 지금은 자야 할 시간을 헷갈리지 않도록 루틴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같은 시간에 자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잠들기 최소 2시간 전부터는 강한 빛이나 자극을 피하는 것. 의외로 기본적인 이 습관이 뇌의 생체리듬을 유지하는 데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 면역 건강 관리도 중요하다. 일부 연구에서는 특정 바이러스 감염(특히 인플루엔자 H1N1)이 기면증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 2009년 신종플루 유행 이후 유럽 일부 지역에서 기면증 발생률이 증가했다는 보고가 그 예다. 유럽의약청(EMA) 보고서에 따르면, 특정 백신이 면역 반응을 과도하게 유도하면서 하이포크레틴 뉴런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됐다. 그렇다고 백신을 맞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건강한 면역력을 유지하고 염증성 질환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만성 염증은 신경세포에 지속적인 손상을 줄 수 있다. 식단, 수면, 스트레스 관리, 전부 다 연결된다. 스트레스는 말할 필요도 없다. 신경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특히 자율신경이 불안정해지면 수면 주기도 함께 흔들린다. 오랜 기간 스트레스를 받다 보면 잠들기가 어려워지고, 수면의 질도 떨어진다. 결과적으로 낮 동안의 피로가 극심해지고, 기면증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과다졸림증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예방 관점에서 보면, 초기 이상 신호를 놓치지 않는 감각이 제일 중요하다. 어느 날부터 눈을 뜨고 있기 힘들다거나, 이유 없이 감정이 격해질 때 몸이 풀리는 느낌이 든다거나, 잠에서 깨도 피로가 전혀 해소되지 않는다면 그냥 넘기면 안 된다. 나중엔 후회하게 된다. 실제로 내가 알던 한 대학생은 시험 기간마다 밤새우면 며칠 피곤하다는 식으로 넘겼다. 그러다 졸음운전 사고로 크게 다쳤다. 나중에 병원에서 기면증 진단을 받았고, 그제야 그동안 신호가 있었구나 하고 말했다.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예방은 완벽할 수 없다. 하지만 나의 수면 패턴을 점검하고, 일상의 리듬을 의식하는 태도는 분명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뇌가 보내는 작은 신호를 놓치지 않는 감각. 그게 기면증 같은 병에서 우리를 보호해주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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